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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논어 이야기
구분 다산 동양고전시리즈
저자 중국공자기금회 기획, 남종진 역
등록일 2008-10-30
페이지 300면/46판
소비자가격 9000원
ISBN 978-89-86316-19-3 04
ISBN(세트) 978-89-86316-18-6
주문갯수
판매상태 정상판매
  
 
 
   

발행일 2008년 10월 20일 제1판 1쇄 발행

◎ 책 소개

공자(孔子, 기원전 551년~기원전 479년)는 이름은 구(丘)이고, 자는 중니(仲尼)이며, 노(魯)나라 사람이다. 공자는 중국 춘추(春秋)시대 말기의 위대한 사상가이자 교육자이며, 유가(儒家) 학파를 창시한 인물이다. 공자의 사상은 한(漢)나라 이래로 중국에 있어서 주도적 지위를 지닌 사상이었다. 송나라의 대유(大儒) 주희(朱熹)는 “하늘이 공자를 낳지 않았다면, 오랜 세월 기나긴 밤과 같았을 것이다.”라고 하여 공자가 중국문화에 미친 영향을 강조한 바 있다. 공자는 한 세대 또 한 세대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지금 우리도 공자의 사상이 지닌 정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논어(論語)』는 공자에 대한 가장 직접적이며 가장 믿을 만한 자료이다. 『논어』는 공자의 일생의 언행록(言行錄)으로, 공자의 행적과 그가 주변 인물들의 문답한 내용을 기록한 책이다. 동한(東漢)의 반고(班固)는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서 “『논어』는 공자가 제자를 비롯한 당시 사람들과 문답한 내용, 공자의 제자들이 서로 문답한 내용과 공자에게서 전해 들은 말을 기록한 것이다. 당시 제자들은 나름대로 기록해 둔 것이 있었는데, 공자께서 세상을 떠난 뒤에 제자들이 모아서 편찬하였기에 ‘논어’라고 부른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어떤 제자들이 『논어』를 편찬하였을까? 동한 말기의 경학자(經學者)인 정현(鄭玄)은 중궁(仲弓), 자유(子遊), 자하(子夏) 등이 편찬한 것으로 보았고, 북송(北宋)의 유학자 정호(程顥)는 『논어』에 ‘증자(曾子)’, ‘유자(有子)’ 같은 말이 나오는 것을 근거로 증자와 유자의 제자들이 편찬한 것이라고 여겼다. 곽기(郭沂)는 『논어』를 편찬한 사람은 공자의 문하에서 ‘덕행(德行)’과 ‘문학(文學)’ 두 가지 방면에 뛰어났던 제자들과 그들의 제자들로, 즉 민자건(閔子騫), 염백우(冉伯牛), 중궁, 자유, 자하 등이라고 주장했다. 『논어』 「선진(先進)」편에는 “덕행에는 안연(顔淵), 민자건, 염백우, 중궁이 뛰어나고, 언어(言語)에는 재아(宰我)와 자공(子貢)이 뛰어나며, 정사(政事)에는 염유(冉有)와 계로(季路)가 뛰어나고, 문학에는 자유와 자하가 뛰어나다.”라는 말이 실려 있다. 곽기의 결론은 정현의 견해와 가까운 편인데, 논증이 설득력이 있어서 정호의 추측보다는 한결 합리적이다.
자료를 살펴보면, 『논어』는 늦어도 한나라 초기에는 이미 만들어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곽점(郭店)에서 출토된 전국시대의 초간(楚簡)에 따르면, 『논어』가 만들어지고 또 ‘논어’라는 이름이 확정된 것은 빠르게는 전국 시대 중기까지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논어』가 전파되는 데 있어서 한나라는 매우 중요한 시기로, 아마도 한나라 초기에 서로 다른 학파에 의해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 학파마다 서로 다른 방언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간독(簡牘)에 기록된 문자에도 서로 차이가 생겼을 것으로 보인다. 보다 중요한 것은 각 학파가 전한 내용은 공자의 언급에 대한 그들 나름의 이해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논어』의 각 판본은 특정한 학파의 연구 결과를 종합한 것이며, 나름의 체계를 갖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나라 때에 『논어』는 「노론(魯論)」, 「제론(齊論)」, 「고문논어(古文論語)」의 세 가지 판본이 있었다. 「노론」은 20편으로 구성되었고, 「제론」은 22편이며, 「고문논어」는 21편이다. 「제론」은 그 가운데 20편은 장구(章句)가 「노론」과 비슷하지만, 「노론」에 비해 「문왕(問王)」과 「지도(知道)」 2편이 더 많다. 「고문논어」는 「문왕」과 「지도」 2편은 없지만 「요왈(堯曰)」의 “자장문(子張問)”을 1편으로 나누어 두 개의 「자장(子張)」편이 있고, 각 편의 차례도 「제론」, 「노론」과는 다르며, 글자도 4백 자 이상이 다르다.
「노론」은 노(魯)나라 땅의 학자들 사이에서 전수되고, 「제론」은 주로 제(齊)나라 땅의 학자들 사이에서 전수되는 등 각각 전수되었다. 그런데 서한(西漢) 말기에 안창후(安昌侯) 장우(張禹)는 먼저 「노론」과 「제론」을 차례로 공부한 뒤에 두 가지 판본을 하나로 합쳤는데, 편명(篇名)은 「노론」에 따르고, 제목은 「장후론(張侯論)」이라고 붙였다. 장우는 한나라 성제(成帝)의 사부라는 중요한 지위에 있었기에 그의 판본은 당시 유학자들 사이에서 크게 존중받았다.
「고문논어」는 경제(景帝) 때에 노공왕(魯恭王) 유여(劉餘)가 공자의 옛집에서 발견한 것이다. 유여는 공자의 옛집을 허물다가 벽속에 감춰둔 고문(古文)으로 기록된 『논어』와 그 밖의 진귀한 문헌들을 발견했다. 「고문논어」는 당시 전수되지 않고 있었다. 그 후 동한 말기에 이르러 정현이 「노론」의 편목(篇目)을 기초로 하여 「제론」과 「고문논어」를 참조하고, 여기에 주석을 붙여서 지금 우리가 보는 󰡔논어󰡕의 모습이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지금 전하는 『논어』는 모두 20편으로 구성된 어록체(語錄體)의 글이다.
공자의 사상이 오랜 세월 동안 경전으로 추앙받은 것은 그것이 시대를 초월하는 생명력을 지니기 때문이다. 공자의 사상은 ‘인(仁)’과 ‘예(禮)’를 핵심으로 한다. 우선 공자는 체계적인 ‘인학(仁學)’을 제시했다. 그는 ‘인(仁)’이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억지로 행하지 않고”, “자신이 서고 싶은 곳에 남을 세우고, 자신이 도달하고 싶은 곳에 남을 도달하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공자의 ‘인학’에 있어서, ‘인’은 내재된 도덕적 자질인 것이다. 사람이 훌륭한 도덕적 자질을 갖느냐의 여부는 개인의 자기수양에서 결정되는 것이며 남의 영향을 받아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공자는 “효제는 인을 행하는 근본일 것이다.”라고 하여 가정에서의 인의 근본은 ‘효제(孝悌)’라고 하였다. 또 가정 밖의 인간관계에서 인은 ‘충서(忠恕)’로 구현된다고 하였는데, 여기서 ‘충서’에 담긴 의미는 사람을 진실하게 대하고 너그럽게 대하는 것이다. 공자는 ‘인정(仁政)’과 ‘덕치(德治)’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논어』 「위정(爲政)」편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 있어서 도덕에 의지할 수 있다면, 이는 마치 북극성은 자리를 잡고 있고 수많은 별들이 그 주위를 에워싸는 것과 같은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인’이 정치적 측면에서 지니는 특수한 의미이다.
‘예(禮)’는 공자의 학문에 있어서 또 하나의 대표적 사상이다. 공자에게 있어서 ‘예’는 사회생활에서의 도덕적 원칙, 정치 제도, 경제 제도 등 다양한 문화적 규범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람의 사회적 행위를 제약하는 기본적 준칙이 된다. 따라서 가정에서든 군신사이에서든 예를 기본 준칙으로 삼아야 한다. 『논어』 「안연(顔淵)」편에는 “예에 어긋나는 것은 보지 말고, 예에 어긋나는 것은 듣지 말고, 예에 어긋나는 것은 말하지 말고, 예에 어긋나는 것은 행하지 말라.”고 하여 ‘예’는 일종의 행위 준칙임을 강조했다. 또 “예를 배우지 않으면 설수가 없다.”고 하여 ‘예’는 한 개인의 입신(立身)의 기틀로 간주했다.
공자는 ‘인’을 핵심으로 삼고, ‘예’를 수기안인(修己安人)의 가치규범으로 삼아서, 유가학설의 체계를 만들고 유가학파의 창시자가 된 것이다.
공자의 사상은 이미 2천 년도 넘는 동안 계승되어 왔다. 따라서 공자 사상의 정화는 우리도 물론 실천할 수 있다. 사람들은 공자의 사상은 오늘날 사회의 발전과 각종 문제의 해결에 큰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그리고 오랜 계승의 과정을 통해 『논어』에 담긴 많은 사상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고, 명언으로 자리 잡았다.


◎ 차 례

01. 배우고 익히면 기쁘지 않겠는가?
02. 말재간이 번지르르하고 안색을 잘 꾸미는 사람치고 어진 사람은 드문 법이다
03. 나는 날마다 자신을 되풀이 반성한다
04. 잘못이 있으면 고치기를 주저하지 말라
05. 군자는 배부름을 구하지 않는다
06. 도덕에 의지한 정치는 북극성과도 같다
07. 쉰 살에 이르러 천명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08. 앞서 배운 지식을 잘 되새기면 스승이 될 수 있다
09. 사람이 믿음이 없다면 어찌해야 좋을까?
10. 어질고 너그러운 풍속이 있는 마을에 살라
11. 옳지 않은 재물과 지위는 누리지 말라
12. 아침에 진리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으리라
13. 남들이 알아줄 만한 사람이 되어라
14. 어진 사람을 보거든 그와 닮으려고 노력하라
15. 도가 실행되지 못하면 뗏목을 타고 바다로 가야겠구나
16. 상대방의 말을 듣고 난 다음에는 그 행동을 살펴라
17. 곤궁한 자는 구제하되 부유한 자를 보태주지는 말라
18. 꾸밈과 바탕이 균형을 이루어야만 군자이다
19. 안다거나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20. 귀신을 공경하되 매달리지는 말라
21. 지혜로운 사람의 즐거움은 물과 같다
22. 자신이 서고 싶은 곳에 남을 세워라
23. 남을 일깨움에 게으름을 부리지 말라
24. 재물을 모으고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은 내게는 뜬구름과도 같은 것이다
25. 세 사람이 함께 가다 보면 반드시 본받을 만한 것이 있게 마련이다
26. 군자는 위급한 순간에도 큰 절개를 지킨다
27. 선비는 몸에 진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기에 도량은 넓고 의지는 강해야 한다
28. 인을 행하는 것은 자신에게서 비롯된다
29. 추운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나중에 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30. 지나친 것은 못 미치는 것과 같다
31. 사사로운 욕심을 이겨내고 언행을 예법에 맞게 하라
32. 사해 안에 사는 사람이 모두 형제가 된다
33. 백성들에게 믿음을 얻지 못한다면 나라는 존립할 수 없다
34. 군자는 남이 아름다움을 이루게 한다
35. 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고 소인의 덕은 풀과 같다
36. ‘인’은 남을 사랑하는 것이다
37. 서두르면 목표에 이르지 못하고 작은 이익을 탐내면 큰일을 이루지 못한다
38. 도덕에 걸맞은 말을 한다고 반드시 덕이 있는 것은 아니다
39. 이익을 보면 정의를 생각하고 위험을 보면 목숨도 내던질 수 있어야 한다
40.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사람을 탓하지도 않는다
41. 지혜로운 사람은 사람도 잃지 않고 대화도 잃지 않는다
42. 큰 뜻을 품은 사람은 자신을 죽여서 인을 이룬다
43. 길게 생각하지 않으면 눈앞에 근심이 생긴다
44.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너그러워라
45. 자신이 원치 않는 일을 남에게 행하지 말라
46. 소문을 듣고 퍼뜨리는 것은 덕을 버리는 짓이다
47. 위험에 부딪치면 목숨을 바칠 생각을 하고 이익을 얻게 되면 정당한 것인지 생각하라
48. 군자는 사소한 도리를 일삼지 않는다
49. 널리 배워 뜻을 돈독히 하고 간절히 물어 문제에 접근하라


◎ 저자 및 역자 소개

중국공자기금회(China Confucius Foundation) 기획
공자(孔子) 사상과 유학(儒學) 연구를 목적으로 중국 정부의 재정 지원으로 설립된 국제문화학술재단이다. 1984년에 설립된 이래로 현재 북경, 곡부, 청도, 연대 등지에 사무처를 두고 있으며, 1999년에는 산동성의 곡부사범대에 공자문화대학을 설립하여 공자의 사상을 가르치고 보급하는 데에 힘쓰고 있다.


남종진 옮김
건국대를 거쳐 성균관대 중문과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에서 한학을 공부했다. 성균관대 어문학부, 한국방송통신대 중문과 강사, 중국 섬서사대(陝西師大) 문학연구소 객좌연구원, 백석대 강사, 건국대 인문학부 강의교수 등을 지내고, 지금은 한국체육대, 명지대 대학원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역저서로 「사기본기」, 「사기열전」, 「사기표서」(공역), 「중국풍속기행」, 「지혜의 샘을 찾아서」, 「초문화사」, 「다선일미」, 「조조전」(근간) 등이 있다.